“소변 주머니와 각성제, 간이 화장실”
미군 B-2 폭격기의 조종사들이 미국에서 이란까지 37시간 왕복 비행한 ‘미드나잇 해머’란 이름의 장시간 작전을 버텨내기 위해 사용했으리라 추정되는 물품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폭격기 7대를 투입해 이란 핵시설에 벙커버스터 14발을 투하한 이 작전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휴전 합의로 이어져 미국의 대이란 공습에 대한 미 언론의 관심도 계속되고 있다.
CNN 방송은 24일(현지시간)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무려 44시간 동안 B-2를 몰아 역대 최장 시간 비행임무 기록을 세운 미 공군 퇴역대령 멜빈 G. 디아일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현재 미 공군지휘참모대학교(ACSC) 고등핵억제연구대학(SANDS) 학장으로 재직 중인 디아일 대령은 2001년 자신이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했을 때도 출격 3∼4시간 전에야 잠에서 깨어나 작전 브리핑에 참여했다고 회상했다.
디아일 대령은 “대통령이 전화하면 그제야 우리는 이틀 밤 연속 비행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 화이트먼 공군기지 내 의사들은 작전을 앞두고 조종사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수면제까지 처방한다.
일단 출격한 뒤에는 조종사 두 명이 간이침대에서 3~4시간씩 번갈아 가며 쪽잠을 자지만 긴장을 늦추는 건 금물이다. 목적지까지 여러 번 공중급유를 받아야 하는데 쉬운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B-2는 급유구가 조종석 한참 뒤에 있어 공중급유기의 급유관을 눈으로 보지 못한 채 훈련과 경험에 의존해 도킹을 진행해야 한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디아일 대령은 “항공의들은 우리가 ‘고필’(go pill)이라고 부르는 (각성제) 암페타민의 사용을 승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후 20년이 지난 만큼 관련 정책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배변 등 생리현상도 조종사들을 괴롭히는 요인이다. B-2의 조종석 뒤에는 별도의 칸막이 없이 화학물질로 냄새를 억제하는 간이 화장실이 있다. 디아일 대령은 “사생활 보호는 상대방이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라면서 조종사들은 혹여 내용물이 넘칠 것을 우려해 정말로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가급적 쓰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고고도에 맞춰 설계된 조종석 환경은 탈수를 유발하기 쉬운 탓에 물을 계속 마셔야 한다. 따라서 ‘소변 주머니’로 불리는 기저귀형 장비가 매우 긴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고양이 모래가 담긴 지퍼백 같은 장비라고 디아일 대령은 설명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같은 기체에 탑승한 다른 조종사와 한 시간에 한병꼴로 물을 마셨고 쌓여가는 소변 주머니 개수를 세며 시간을 보냈다면서 “44시간이나 있으면 이런 걸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각자 준비한 도시락과 제공되는 기본 식사가 있지만 비좁은 조종석에서 수십시간을 보내는 까닭에 음식을 많이 먹는 경우는 드물다.
임무 완수후 본거지인 화이트먼 기지로 돌아오면 사후보고와 식사, 약 한 시간 동안의 감압(減壓)을 거쳐 마침내 편히 잠을 잘 수 있게 된다고 디아일 대령은 말했다.
이처럼 신체적·정신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임무인 까닭에 화이트먼 공군기지에는 심리학자들도 배치돼 B-2 조종사들의 임무준비를 돕는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조종사들은 영양학 관련 교육도 받는다. 9년간 B-2를 몰았던 스티브 바샴 전 미 유럽사령부 부사령관(퇴역 중장)은 앞서 로이터 인터뷰에서 “우리(조종사)는 수면 연구를 거치고 영양 교육을 통해 각자 무엇이 잠을 깨우는지 배운다”면서 자신의 경우 가능한 한 싱거운 음식을 선택했으며 통밀빵에 치즈 없이 칠면조 고기를 얹은 샌드위치를 주로 먹었다고 말했다.
날개 길이가 52m가 넘는 B-2 폭격기는 조종실이 비좁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 내부에는 조종사들이 더 편안하게 임무에 임할 수 있도록 화장실뿐 아니라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미국 매체 뉴욕포스트는 22일 보도했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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